춘란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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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주은 등록일 2008/03/31 09:26:27 조회수 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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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색화 / 김주은


길고 긴 고달픈 꽃대가 호수처럼 흔들린다.
고뇌의 잔재가 깔린 희뿌연 적색지대 들판으로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햇살 비치기를 반복하기를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더니
고산 숲 전체가 수런거리며
검고 누런 가지마다 잎새마다 퇴색된 피부가 벗겨진다.
짙푸른 녹의 입자가 출렁거린다.

비를 기다리는 것은 내 오랜 숙원이라.
타원 궤도처럼 휘어도는 공룡 발바닥 바위 아래
나무와 풀들이 사각사각 말라갈 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속 물줄기를 찾아 뿌리 촉등을 켰다.
딱딱한 지면 위로
은하의 곡선 부드럽게 그리는 푸른 녹줄 사이로
여러 알몸 메달아 산모 배 속 아이처럼 사지 오므리고
흰 구름 휘덮여 숨 고르고 있었으니

참 오랜만에 신록을 깨치고 대지를 구르면서
그대 우두둑 스칠 적에
하얀 모시포의 살짝 찢고 오래 녹을 씻었다.
흐물거리던 뼈 달라붙고 가느다란 실핏줄 녹피 흘러
정수리 녹색모자 위로 깨어지는 옥합이
어즈러이 흘러나오는 그대 향기 아니런가.

울퉁불퉁한 파편과 산발한 덩굴 사이
흙탕길 침묵과 짝퉁 전갈 줄기를 갉아먹어도 벙글지 못해
양수가 수위를 넘고
영혼과 육체가 그대 강가로 침전하게 되자
드디어 어둡고 시린 혼미 꽃대궁 길게 밀어올려
하얀 섬유질 꿰뚫고
외마디를 지르며
세상 밖으로 알몸 터뜨렸다.

연한 녹색에 주홍 줄이 빗살처럼 죽죽 그어진 불타는 동그란 얼굴.
참회의 흰 눈물 뚝뚝 떨구며
그대 향기 흐르는 하늘 언덕 강가로
가느다랗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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