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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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적색지대 파일명 - -
글쓴이 김주은 등록일 2008/03/21 20:26:14 조회수 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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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비록 험한 골짜기에 빠질지라도 나는 마취의 길을 걷고 싶다)


1 적색지대


숲 속의 좁은 길을 따라
외로운 꽃잎으로
숨 가쁘게 쏟아지는 푸른 별의 고산 땅,
적색지대를 찾아
까치 길을 떠나야 했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보랏빛 삶 속에서
어디선가 들려올지 모르는
전설의 늪에 빠져있을
꿈의 보석을 찾기 위해
초가삼간 사립문이 묻혀있는
칸나의 숲으로 떠나야 했다

생의 묽은 날벌레가
뚝 뚝 튀어오르는
댕댕이덩굴의 퇴색된
물그림자를 즈려 밟고서
방울뱀 융단의 가파른 산골을 따라
낮은 포복으로 기어오르다 보면
은빛 찬란하게 빛나는
청음의 바다가 펼쳐진다

새파란 수평선 위로
필름처럼 휘감기는 요트들,
그 너머로 적색지대가 넘실댄다



2 푸른 문


바다야, 바다야
해 종일 울어대는 바다야
고산 궁전소리 들리면
속죄의 마음으로
붉은 복색화
너에게 던지오니
좁은 문 하나 열어주라

파도야, 파도야
해 종일 출렁대는 파도야
고산 종소리 울리면
대속의 마음으로
홍화의 눈물
너에게 띄워 보내니
터널 끝으로
푸른 문 하나 열어주라



3 무도회의 광란


어느덧 고산 정상은 다가오고
말벌떼가 자작나무 고행을 빤다
땅속에선 검은 얼굴들이 들판에 삐집고 나와도
산수유 붉은 열매가 창공을 틱 틱 깨트리는 것처럼
적색지대는 습한 회색 빌딩 물오른 소리로 가득하다

상큼한 솔 향기 흐르는
돌 틈 사이 들꽃들아
뭐 흐뭇해 흔들흔들 춤을 추느냐
환한 선홍 석류처럼 암석에 앉은 피부의 돋음,
군 행군 때의 무좀이 도진 것 같다
등산화 끈 가지에 걸려 호랑나비 흉내 내볼까
산을 7개 정도 넘어서야 고산 봉우리에 이르러
천하독존 산야를 휘어본다

굽이굽이 흐르는 산정의 아아 처절한 비경이 쏟아진다
푸른 빛에 휩싸여 흐느적 꿈틀거리는 나신의 곡선들,
살아서 펄펄 굽어도는 은빛 갈치 떼의 소용돌이,
사르르 휘감는 뿌연 은하곡선 흔들려
욕망의 뿔은 꺾이고 적송의 붓자국이 군락을 이루는가
숲마다 빨간 눈물 샘이여,
둥근 버섯나무를 지나 등마루 밑 숲 속 별장으로 흘렀어라

그 아래 심해도의 강변 그리움이 젓갈색 해초 미역을 감느뇨
누런 황토를 뚫고 두겹으로 갈라진 노란 터널은
파아란 수평선에 꽂혔으리
어느 골짜기에 난인처럼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진 시공 늘어진 곳에
고향 잃고 떠도는 고산의 꽃불이
향기로운 연분을 토하기 시작했어라
고산 별장에 은밀히 숨어들어
햐햐햐햐 휘몰아치는 난꽃의 파워,
소행성 홍두화 소심의 진동이 서성이고
망각의 꽃대 부러지는 시간 파편이 야속하게 멈출 때까지
저토록 날카로운 녹과 울부짖는 정열의 황금 문을 박차고
무언가에 살 맞아 박 터지듯이
온갖 꽃불이 하늘 위로 콸콸 휘날려라
흐아흐아흐아흐아
앙우앙우앙우앙우
초토의 숨 막히는 황금 빗줄기,
전천 후 고산의 난꽃들이, 씨방들이
뼈를 추스르며 타오르다가
흔적도 없이 아득한 블랙홀로 사라질 때마다
다시 화이트홀로 격하게 반짝여라
자연 내면의 조화인가
무도회의 광란인가



4 그녀


솔향 그윽한 늦은 봄 정상에서
고산의 웅장한 비경에 빠져있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홍두화 소심, 그녀를 찾기 위해
온 적색지대를 돌아다녔으나 헛일이었다
아아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나는 어느 허름한 언덕에 앉아 강가에 난꽃을 던져보기도 하고
담배 한 개비를 씁쓸하게 물고서
푸른 하늘가에 그녀를 그려본다



5 절체절명의 아편


지리산 기암괴석을 품고
소나무 음지에 숨어있는 거니
물수제비 뜨듯 적막의 수풀에 숨은 거니
이제는 돌아와 나의 수묵화가 되어
혹한을 환하게 비추는 대지의 등불이 될 수는 없는 거니
뻐꾹새 둥지 위로 달콤한 꿀과 사파이어 패스워드 휘어나오는
적색창고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
푸른 바다에 거룻배를 띄워
누구도 밟지 않는 나만의 세계로 낯을 내리리니

서글픈 석양이 깔리고 고산의 종소리 찰랑찰랑 울릴 때에
적색지대의 8부 능선에서
희귀한 난초를 바라보다가
새떼 흩어진 하늘가의 고운 살 속
눈먼 한 마리의 사슴처럼
난꽃을 머리에 꽂아보지만 그대는 손에 잡히지 않구나
온 숲 속이 열병으로 뛰어다니자
그대의 울부짖는 창백한 잎사귀를 외면한 채
하늘 살만 잔득 베어 물고
보춘 휘날리는 뱀사골을 휘돌아
적색의 융단을 밟고 내려왔다

늑골 틈새로 황야의 스산한 바람이 운다
얼얼하고 으깨어진 납탄 조각을 꺼내어 무심한 강가에 던진다
저 멀리 아직도 온 산야를 이글이글 태우는 적색의 물결 아래,
절체절명의 상아 무덤 같은
아아, 넌 화이트 늪에서 빠져나온 아편인가



6 토성의 띠


뻘밭 속에 파묻혀 어디로 숨었나
신기루 상흔은 단죄로 멍들고
봄꽃 대대목에 메아리만 날아오르니
성긴 독학자의 길
대지의 숨결만 반짝거려,
우주선이 창공에 떠
저 화백의 실라 고산이나 영사기로 돌려볼까
검은 멧돼지 킁킁되는 골짜기에 진달래가 피를 토하듯
지천으로 깔린 수많은 환상의 난초 보았으리
꿈엔들 그 시절을 잊을까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바닥이 나버리고
내가 모를 때 누군가가 솔찬히 재미를 보았을 텐데,
하늘 음역을 오르내리며 난도의 압록강을 건넜을 것인데,
지금도 어딘가 숨어서 거듭 변신하는 그대를 위해
서글퍼지는 봄날 해질녁에 아름다운 극광 해후의 꿈을 꾸노라
토성의 감복색이 아른대는 진갈맷빛 산천에 놀러 가는 날,
수나모 원판 복색화 포르르 멘스 달이
단엽 중투 밀실로 위태롭게 마실 드는 날에 말이지



7 붉은 경전


3월의 들판을 가로질러
편의점 24시 문둥 아기과자 구워먹는 무변강사
동구만 난의 통뼈 분질러놓고
별빛 들창 쏘는 언덕에 서서
날담배를 질근질근 씹으며
짙푸르게 포효하는
적색의 불꽃잔치를 상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시공의 터널 끝에 추억의 홍두화 소심아
내 영원설의 길이가 네게 닿았으면 좋겠다
푸릇푸릇 참대, 길게 드리워
삐꾹 삐꾹 강하게 흔들 때
세상 세상에 황 누런 햇덩이가 축축ㅡ들판을 구르고
참대 참대 강강ㅡ 휘청거려
짙푸른 바다 속에서 방금 낚아올린
연한 녹색에 붉은 줄이 죽죽 그어진 그대를
두 손으로 안고 난실로 들어가
낙소분에 심어놓구
숨 가쁘게 쏟아지는 적색지대의 산 껍데기 상아 무덤 같은,
질풍노도의 산 누더기 은하 공전 같은
그대의 붉은 경전을
경배하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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