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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그리움의 언덕에 서서 파일명 - -
글쓴이 김주은 등록일 2007/01/25 20:28:48 조회수 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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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언덕에 서서

김주은


나는 산속의 좁은 길을 따라서
절망의 꽃잎으로 숨가쁘게 쏟아지는
푸른 별의 고산 땅 적색지대를 찿아서 까치 길을
떠나야 했다

고요히 흐르는 보랏빛 삶의 한복판에서
어디선가 들려올지 모르는
전설의 강에 빠져있을 백송이 난꽃을 찿아서
썰물의 어린 시절이 묻혀있는 꿈의 향수를 찿아서
서러운 칸나의 숲으로 떠나야 했다

생의 묽은 죽에 희석된 부엽의 시체들을 헤치며
낮은 포복으로 바람의 벽을 타고
기어오르다 보니
펄펄 굽이치는 청운 바다가 우뚝 서 있고,
아득한 수평선은 필름처럼
조각배를 휘감고 있다

갑자기 숱한 벌떼가 폐선 주위에 피리 소리를 내며
해초의 검은 고행을 빨고 있다
땅속 틈새로 물귀신이 삐집고 나와
때늦은 반딧불을 잡아먹고 있다

산수유 붉은 열매가 들판을 틱 틱 깨트리고
어느새 고산은 하늘 무너지는 소리
쿠궁 ㅡ
대 자연을 흔든다

생의 육정이 이곳에 머무를 수 있다면
적벽의 층계로 내려가 뜨거운 돌이 되어
영원토록 산천을
굽어 볼 수 있을 것을
매혹적 뻐꾸기 둥지 위로 에움길을 돋아 세우면
적벽 강가에 새 물길을
낼 수 있을 것을
폭풍과 비명의 해일이 몰아친다 해도
운무 자욱한 능선에 올라서서
푸른 적벽송이 되어 온 천하가 잠들 적에도
독야청청 푸르디푸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을
희뿌연 나신의 조각상과 희디흰 풍경소리로
한폭의 산수화로 남을 텐데
이내 몸은 피조물의 한계를 느끼며
분분히 휘날리는 황금의 물결속에서
부서지는 낙엽처럼 미지의 허공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구나

해의 그림자가 꼬리를 찰랑찰랑 흔들 때에
사라지는 초록의 필름을 굽어보며
새떼가 흩어진 하늘 가의 싱싱한 살만 잔뜩 배어서
내려와야만 했다
침울한 안개로 실컷 불어터진 짐승 길,
쩡 쩡 거리는 산 귀신의 울음을 뒤로 한 채
붉고 붉은 극락이 휘날리는
자작나무 숲을 지나서 내려와야 했으리

마음의 늑골 틈새로 뻐꾸기 삐삐소리 삐집고 나와
얼얼하게 으깨어진 납탄 조각들을
질퍽거리는 개울가로 흘러보내고
저 멀리 고산은 아직도
푸드덕 날개를 펄럭이고 미쳐 날뛰던 파도가
온 산야를 이글이글 태우는
처절하고 고요한 산적에 인적은 지취를 감추고
찾고자하는 희귀종의 난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많은 환상의 여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타임캡슐을 타고 언덕 저편 꽃등 날의 태고로 돌아가서
사슴이 뛰어노니는 무언가 노래의 패랭이꽃
고산에 들어선다면
꿈결같이 숱한 나비떼와 사랑하고
난의 향취에 빠져
그대 품에 다리를 쭉 뻗고서
도도히 흐르는 천상 난꽃의 꿈에 취했을 것을,
후두둑 떨어지는 밤송이처럼
지천이 온통 히말라야 새 둥지에 박혀있는 별통밭인 것을,
첫사랑의 부리에 소금 별을 뿌려서
질식할 정도로 하얀 꽃술을 먹을 것을,

토성의 띠를 두른 누런 중투 물고기 떼,
희귀한 적색 돔 공룡알,
적화 원판 숫처녀 숫총각의 푸성귀,
단엽 두화 생쥐의 이빨 등등

그때는 난이 사람을 구워먹고
사람이 난을 호호 불어먹는
연탄처럼 타버린 가을 해조차도 풀밭에 취해 쓰러져
풀 반 난초 반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니
생각은 자유라지만 얼마나 황홀이 뜬구름 죽고
넘 넘 행복이 녹아내렸을까

짙고 푸른 청어 떼가 흐르는
난의 적토에 드러누워서 하얀 것들의 동화도 듣고
가을 유서를 쓰다만 솔방울에 맞으며
폐결핵 벌총에 쏘이고 산돼지 흠흠 거려도
바닷깡의 어부의 딸처럼
고도의 은하수 뚝섬으로 시월의 빈 들판을 가로질러서
앞마당 갈대밭으로
눈에 아리는 고산의 적산 사랑가를
떠나도록 비명 지르며
고래의 길을 떠났을 것인데


이제 이곳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청동 산의 울부짖음과 슬픔의 밤바다에 잠기며
별빛 창가에 들창을 쏘는,
어느 개천가의 왁자지껄한 캐롤 송의 가지에
전설의 숨결일랑 걸어두고서
저 멀리 지고 있을
붉디 붉은 환상의 여인을 흘겨보며
그 처절한 가을 유서 같은 적색지대의 첫사랑,
메마른 슬픔에 등불,
그리움의 퍼즐 조각을 밟으며
산인들이 머무는 야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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